Opinion & Column

부럽다, 카보베르데

dalmasian 2026. 7. 7. 06:29

[광화문·뷰] 2026.07.07.

‘지배구조 좋은 기업’의 정의는
주주·이사회·경영진 목표 일치
단일 목표 ‘승리’ 하나로 뭉친
그런 축구팀이 져도 박수받는다

지난 4일 열린 중남미 월드컵 32강에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에 졌지만 예상을 깬 좋은 경기를 펼쳐 깊은 인상을 남긴 카보베르데 선수들이 귀국해 수도 프라이아에 있는 공항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팬들과 만나는 모습. /EPA 연합뉴스

대서양 위 작은 나라 카보베르데가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에 맞서 벌인 지난 주말 경기는 북중미 월드컵의 가장 강력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연장 끝에 졌지만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하게 잘 싸워 큰 박수를 받았다. 섬나라 카보베르데 인구는 52만명, 1인당 GDP는 약 7000달러다. 수조 원을 쏟아붓고도 월드컵 본선 근처에도 못 간 중국 팬들은 얼마나 씁쓸할까. 한국 처지도 딱히 낫진 않다.

월드컵에서 깜짝 선방한 나라는 전에도 있었다. 이 중 얼마 안 가 가라앉은 팀도 적지 않다. 한때 카보베르데 못지않게 주목받았던 트리니다드토바고가 그중 하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인구 가장 적은 본선 진출국(130만명)’으로 이름을 날린 이 중남미 섬나라는 16강엔 못 갔지만 강호 스웨덴과 비기는 등 좋은 경기를 펼쳐 팬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때 25위였던 FIFA(국제축구연맹) 순위가 지금은 102위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찾아보니 선수와 팬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축구의 경제학을 분석한 책 ‘사커노믹스’에 나온 대표적 사건을 인용한다. “부패한 트리니다드토바고 축구협회장 잭 워너는 FIFA에서 개발도상국 지원 기금을 받아 호화로운 축구 시설을 지었다. 후일 부지가 워너 자신의 소유였다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선 축구 경기조차 별로 열리지 않았다. 더 돈 되는 결혼식이나 공연을 워너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직후엔 보너스로 지급할 돈을 협회가 착복해 선수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정치적 수완으로 협회를 장악한 워너는 자신에게 반항했다며 주전급 선수 16명을 국가대표팀에서 영구 제명했다. 이 중에는 유럽에서 뛰던 실력 좋은 선수가 많았다. 이 꼴을 보고 다른 선수들도 등을 돌렸다. 다음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대표팀은 최하위로 탈락했다. 워너는 쫓겨나 수사를 받고 FIFA까지 나서 재건을 지원했지만 무너진 실력과 신뢰는 아직 회복되지 못한 모습이다.

카보베르데 역시 FIFA의 개도국 지원금을 받았다. 더 절실해서인지, 청렴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돈을 깨끗이 쓰려 노력한다고 안팎에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축구협회 총회에선 11개 지역 축구 연맹 대의원이 독립된 투표권을 행사하며 회장을 견제하고 회계위원회·선거위원회 같은 다수의 개별 위원회가 자금 집행, 감독 선임 등을 철저하게 감시한다는 식이다. 까다로운 FIFA로부터 ‘모범 수혜국’으로 인정받은 카보베르데는 10년간 세 번에 걸쳐 기금 1900만달러를 타내는 데 성공했다. 이 돈은 경기장 등 국내 축구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실력파 해외 선수를 영입하는 밑거름으로 쓴다고 한다.

많은 학자가 축구 잘하는 나라의 조건을 알아내려 연구를 해왔다. 논쟁이 있지만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 성적이 대체로 좋다’는 큰 줄기 정도론 결론이 수렴되는 모습이다. 선수와 감독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무능과 부패를 제거해 대표팀이 최고의 역량을 펼치게 하기엔 독재보다 민주주의가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메시’ 없는 나라라면 이 정도는 해야 승산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경제학과 교수에게 기업의 ‘좋은 지배구조’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답은 간단했다. “주주와 이사회와 경영진이 사익을 노리지 않고 회사의 일치된 목표를 추구하도록 이해관계를 정렬하면 됩니다.” 협회·감독·선수가 ‘작은 나라, 거대한 열정’이라는 모토 아래 승리라는 일치된 목표를 향해 뛴 카보베르데 대표팀은 큰 감동을 주고 국가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카보베르데가 이런 제도, 이런 실력, 이런 집념을 지켜내 다음 월드컵에서도 잘했으면 좋겠다. 부럽다, 카보베르데.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