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피아노 반주자는 물품보관소 직원? 연주를 완성시키는 ‘무대 위 동반자’

dalmasian 2026. 7. 7. 06:32

[전문기자의 시선] 2026.07.06.

지난달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연주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왼쪽)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습관적으로 잘못 번역하는 말들이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독주회(獨奏會)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홀로 연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아노 독주회나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무반주 독주회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기악 연주자가 무대에서 홀로 연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주를 맡는 피아노가 언제나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악 리사이틀을 독창회(獨唱會)라고 옮기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반주자가 무대에서 노래까지 부르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실은 리사이틀(Recital)에는 독주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탈리아어 동사 ‘레치타레(recitàre)’는 이야기나 시를 낭송한다는 뜻이다. ‘일리아드’나 ‘오디세이’ 같은 고대 서사시를 들려주는 음유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도 좋겠다. 음악 역시 하나의 이야기요, 그렇기에 연주자는 무대 위의 이야기꾼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리사이틀을 독주회로 옮기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무대 위에 엄연히 존재하는 피아노 반주자를 유령이나 그림자 취급하게 된다는 점이다. 비단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영국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1899~1987)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등의 반주를 도맡았던 전설적 연주자다. 평생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책에도 ‘부끄럽지 않은 반주자(The Unashamed Accompanist)’라는 재미난 제목을 붙였다. 책의 첫 장에서 그는 “음악회의 성공에 대한 반주자의 기여도가 물품 보관소에서 외투를 맡아주는 일과 별 차이가 없다는 시각이 만연해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달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연주회는 더욱 반가웠다. 독일 명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59)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7)이 이날 호흡을 맞췄다.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선우예권이 오케스트라 협연이나 독주 못지않게 애정을 기울이는 분야가 바로 가곡 반주다. 특히 ‘겨울 나그네’는 10여 년 전부터 테너 김세일과 베이스 연광철 같은 성악가들과 꾸준하게 호흡을 맞췄다. 간담회에서도 그는 “독주회에서는 혼자 호흡을 끌고 가야 하는 반면, 가곡에서는 성악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특별한 감정을 남긴다”고 했다.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 24편에 곡을 붙인 이 연가곡에서 피아노와 성악 역시 철저하게 동반자 관계다. 묘사적 성격이 두드러진 대목들에서도 선우예권의 건반 소리는 여과기를 투과한 듯한 부드러움이 있었다. 특히 그가 좋아하는 곡으로 꼽은 21번째 곡 ‘여인숙(Das Wirtshaus)’에서 가장 울림도 커졌다. 지극히 단순하게 보이는 하향 음계에서 정서적 깊이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평생 흠모했던 선배 베토벤에 대한 슈베르트의 존경심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반주(伴奏)는 조연이나 단역 정도로 치부하기 쉽지만, 실은 동반자(同伴者)가 되어서 연주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로도 ‘어컴퍼니먼트(accompaniment)’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동반자(company)가 된다는 뜻이다. 삶의 동반자를 반려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반주자는 무대 위의 동반자가 된다. 인생에서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반주자는 겸손을 일러주는 존재들이다.

김성현 기자 danp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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