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시장 이긴다”더니… 정부, 시장 역공에 속수무책

dalmasian 2026. 7. 31. 22:51

2026.07.31.
[News & View]
규제 뿐인 부동산 정책과 증시 ‘레버리지’ 도입 후폭풍
매매·전세·월세 모두 오르고, 주식은 도박판으로 변질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이재명 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집권 1년 2개월 만에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 서울 아파트의 매매·전세·월세가 동시에 급등하는 ‘트리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친 집값’의 정책 실패를 가져온 문재인 정부 1년 차보다 더 심각한 지경이다. ‘생산적 금융’인 증시로 자금이 흘러가게 해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역대급 실적을 내는 이 천혜의 시기에도 섣불리 도입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때문에 증시를 거대한 도박판으로 변질시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AI(인공지능) 혁명 후폭풍 탓에 청년 고용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해결의 단초조차 보이지 않는다.

‘머니 무브’ 카드로 난제 해결?

‘코스피 5000 시대 개막’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은 투기, 주식 투자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프레임으로 증시 띄우기에 나섰다.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돈줄은 ‘대출 규제’로 죄고, 반면 주식 투자는 ‘빚투’도 나쁘지 않은 행태로 포장했다.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과 때마침 시작된 반도체 수퍼 사이클 덕에 코스피 지수가 5000 선을 가볍게 돌파한 뒤, 취임 1년 만에 지수가 8000 선을 웃돌자 정책 당국자들이 오만해졌다. 대통령은 “아직도 저평가”,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국·중국에 이어 글로벌 시총 3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전날 종가보다 1.23% 떨어진 5593.56을 나타내고 있다. 28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는 누적 17.2% 하락했고, 전체 시가총액은 922조원 사라졌다./뉴스1

국민연금의 주식 매물 출회가 증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율을 확대하는 카드까지 동원했다. 급기야 서학개미들의 미 증시 투자가 환율을 끌어올린다면서, 미국행 투자금을 국내로 유치해 환율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삼성전자·하이닉스 종목 ETF를 출시하는 등 손쉽게 주가 상승을 견인하는 졸속 정책을 잇따라 내놨다. ‘AI(인공지능) 3대 강국’ 을 향해 간다면서 기업에 ‘호남 반도체’ 등 수천조 원대 투자 계획도 발표하게 했다.

장밋빛 전망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증시 거품은 AI 과잉 투자론, 메모리 고점론에 이어 중국 메모리 기업 CXMT의 상장 대박과 중국의 반도체 노광 장비 국산화 소식이 이어지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픽=박상훈

◇초기엔 ’실용’과 ‘이념’ 사이 고민

이 대통령은 ‘실용이냐, 이념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과감하게 ‘먹사니즘’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자신을 알려왔다. 예컨대 ‘주 52시간 근로제’와 ‘상속세 개편’ 문제를 다룰 때 그랬다.

대선 후보 시절 이 대통령은 “중요 산업 연구·개발(R&D) 영역의 고소득 전문가들이 (본인이) 동의할 경우 몰아서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면서 산업계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양대 노총의 반대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후퇴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 최고 세율의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선, “상속세 부담 때문에 살던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 상황은 잔인하다”며,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을 고려해 약 18억원까지 상속세가 면제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권에서 ‘부자 감세’ 논란이 일자 아무 진척이 없다.

그래픽=박상훈

정치 논리에 오염된 경제정책

정부 출범 후 정책 행보는 실용과 거리가 멀었다. 부동산 정책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규제 일변도 정책을 20여 차례 쏟아내도 집값 잡기에 실패했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한술 더 뜨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때 “부동산 정상화는 코스피 5000보다 훨씬 더 쉽다”(1월 31일 이 대통령)고 자신했지만, 집값 상승에 놀라 문재인 정부 시즌2 같은 정책을 쏟아냈다. 토지거래허가지역을 서울 전역과 수도권으로 확대하고, 주택 담보대출을 6억원으로 제한했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다시 시행했다. 하지만 매물 잠김과 더불어 풍선 효과가 나타나면서 집값·전월셋값이 함께 뛰는 트리플 강세 현상을 초래했다.

상황이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주택 보유세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청년층과 서민들이 전월셋값 폭등 및 대출 규제에 대해 하소연하는데 대통령이 주재한 ‘부동산 대토론회’에선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 비거주 1주택자, 고가 주택자를 겨냥한 보유세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30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올해 2분기 서울 전용면적 84㎡ 아파트 평균 실거래 매매가격은 13억5940만원, 평균 전세 보증금은 7억3342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 7.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뉴스1

시장의 역습

이재명 대통령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고 말했지만, 요즘 증시, 부동산 상황을 보면 정부는 시장의 역공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주택 공급 문제를 풀려면 전월세 공급자로서 다주택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들이 공급자로 나서도록 다주택 규제도 풀어야 하는데 이런 시장 친화적인 해법은 외면한다.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으로 15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무주택자들의 불안이 가중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없고 지지층만 보면서 ‘부동산 정치’ 프레임으로 강남의 초고가 주택 보유자를 옥죄는 세제 개편을 추진한다.

증시 대폭락 사태는 인위적인 증시 부양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증시의 ‘생산적 금융’ 역할은 온데간데없고, 세계가 우려하는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남미를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이번 정류장은 칠레입니다”라는 글을 올리자, 댓글 창에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이 속속 올라왔다. “사람들은 패닉인데 순방 가서 뭐 하나” “레버리지 만든 인간들이 주식시장을 X판으로 만들곤 밖으로 나다닌다” “이번 국장 정류장은 칠레가 아니라 화장터다”… 이재명 정부의 제1 치적으로 꼽혀온 ‘증시 불장’이 하루아침에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어려운 과제’부터 ‘정공법’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했던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 행보가 왜 이렇게 꼬이게 됐을까. 방만 재정, 부채 탕감, 노란봉투법, 주택 대출 규제 및 증시 빚투 조장을 보면 알 수 있듯, 경제 정책이 포퓰리즘과 정치 논리에 흔들리고, ‘돈 풀기’ ‘머니 무브’ 같은 손쉬운 정책으로 경도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규직·비정규직 간, 원청·하청 간 임금 격차를 풀려면 정규직의 양보, 임금 체계의 수술이 필수적인데, 노란봉투법을 만들어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에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노란봉투법은 수십 년 세월 어렵게 정착된 노사 교섭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려 산업 현장에 대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하청 노조의 과도한 요구가 관철되고 그로 인해 산업 전반 경쟁력이 떨어지면 그 청구서는 미래 세대에 떨어질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재정·노동·규제 개혁 및 꾸준한 주택 공급처럼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경제 체질을 바꾸고 시장 원리에 충실한 근본 과제에 더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손쉬운 졸속 정책에만 집착하다가는 지금같은 시장의 역습에 더 큰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다.

김홍수 경제 에디터 hong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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