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정치가 망가트린 국민연금 안전판, 폭락장 속수무책

dalmasian 2026. 7. 31. 22:55

2026.07.31.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최근 폭락장에서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가가 과열될 때 주식을 팔고, 폭락할 때는 사들여 급등락 충격을 완화해왔다.

지난해까지 주가가 8% 이상 급락해 거래가 정지되는 서킷브레이커가 여섯 차례 발동됐을 때 국민연금은 하루 최대 5000억원대를 순매수해 추가 하락을 막는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아홉 차례 서킷브레이커가 걸리는 동안 국민연금이 순매수로 대응한 것은 네 번에 불과했다. 정작 시장이 무너질 때 소방수로 나서지 못한 것이다.

국민연금을 무력하게 만든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다. 지난해까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상한은 19.4%였다. 그런데 올해 주가 급등으로 한도를 넘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주식을 파는 대신 한도를 28.8%로 높였다. 한도 초과분 매각도 지방선거 후인 6월 말까지 유예했다. 댐에 물이 적정 수위를 넘었는데도 방류하지 않고 더 채운 셈이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국민연금의 자동 조절 장치를 꺼버렸다는 분석이 무성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더 보유하면 그만큼 득이 되고 국민의 노후가 보장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국민연금의 주식 한도 변경은 기금운용위가 결정했지만, 대통령이 초과분을 줄이지 말라는 지침을 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는 7월 폭락장에서 엄청난 부작용으로 되돌아왔다. 주가 폭락이라는 홍수가 났는데 댐의 물(주식)을 더 채울 여력이 없었던 국민연금이 거꾸로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내 주식 비중 확대라는 꼼수가 꼭 필요한 순간 국민연금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됐다.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은 정부의 증시 부양 펀드가 아니다. 시장이 오를 때는 냉정하게 차익을 실현하고, 폭락할 때는 원칙대로 저가 매수해야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런 기본 원칙을 허물고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결과가 시장 폭락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 경위를 규명하고, 정책 담당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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