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0.

조연순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명예교수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우울증 위험 11배, 무너지는 초등교사’라는 기사를 보고 초등교육 분야에서 수십 년 몸담았던 필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뺨을 맞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학부모의 모욕적인 행동과 협박에 시달려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효시는 ‘서당교육’이다. 양반의 자제만 교육을 받던 조선시대에 평민교육을 위해 마을 단위로 서당들이 세워졌다. 당시 훈장은 자격증은 없어도 마을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에도 많은 학생이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교육자들이 한국의 교육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과도한 입시 중심 교육으로 인해 교육열이 국가나 인류의 발전보다는 내 아이 중심, 다른 아이와의 ‘경쟁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홍익인간의 교육 이념이 무너져 가고 있다.
선생님이란 존칭어는 교사라는 단어와 의미가 다르다. 선생님이란 ‘먼저 배우고 깨달아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아야 한다”고 할 때도 있었다. 교사는 단지 가르치는 직업을 일컫는 용어다. 요즘은 선생님의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교사라는 의미로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학교란 단지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자녀가 가정을 떠나 공동체 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 나를 발견하고 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필요한 기초 지식과 문제해결능력을 배우는 곳이다. 그런데 요즈음 일부 학부모는 내 자녀가 학교에서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하기를 바라며 다른 활동들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학부모의 항의가 들어오는 체험 학습과 체육 대회 같은 활동들을 기피한다고 한다.
그러나 AI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점점 필요해지는 능력은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까지 개발할 것인지’ 등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협력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의사소통과 협동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학교에서 공동체 생활로 길러질 수 있다.
학부모의 역할은 여러 가지 교육활동들을 학교에서 시도하고 실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요즘처럼 교사를 불신하고 인격적인 공격을 하는 분위기에서 자녀들이 학교 교사를 선생님으로 존경하고 믿을 수 있겠는가?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교육청 중심으로 교권을 보호하는 전담 조직과 교권 보호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법적 대응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법적인 이해관계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신뢰할 때 교사 또한 선생님으로서 사명감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조연순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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