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지옥에나 가세요”

dalmasian 2026. 8. 5. 11:06

2026.08.03.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에는 술 취한 문지기의 독백이 나온다. “이곳이 지옥문이라면 열쇠 돌리느라 손이 쉴 틈이 없겠구나.” 죄와 탐욕이 들끓는 성 자체가 이미 지옥이 되었음을 비꼬는 명장면이다. 동양의 염라대왕이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승에서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은 자들을 단죄하는 장소라는 점이다. 지옥은 역설적으로 ‘사법 정의의 마지막 보루’였다.

▶‘지옥에나 가라’(Go to hell)는 말이 유명해진 계기로 미국 성장 소설의 고전인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꼽는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의 소원은 하나였다. “절벽 끝에서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세상의 부조리와 위선적인 어른을 향해 뱉은 그의 독설은 분노가 아니라 절규였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봉하마을을 찾아 소셜미디어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없앤 형사소송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뒤였다. 김 의원은 개정안 서류를 봉투에 넣고 “노무현 대통령님, ‘야, 기분 좋다~!’라고 하고 계시지요?”라고 적었다. 그 게시물에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가 한 줄 댓글을 달았다. “지옥에나 가세요.”

▶2022년 김씨는 일면식도 없던 남성에게 뒷머리를 돌려차기로 가격당하고 목숨을 잃을 뻔했다. 경찰 초동 수사에서 성폭행 정황이 밝혀지지 않아 1심에서는 단순 살인미수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자칫 10여 년 만에 가해자가 사회로 복귀할 뻔했던 상황. 진실을 밝혀낸 건 2심 재판 과정에서 진행된 검찰의 보완 수사였다. 피해자 바지 안쪽에서 가해자 DNA를 찾아내 혐의를 ‘강간살인미수’로 바꾸고 형량을 징역 20년으로 끌어올렸다. 피해자는 국회 토론회에 나와 “보완 수사권은 진실에 다가가는 최후의 안전장치”라고 호소했다.

▶국가 사법 시스템의 존재 이유는 약자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피해자를 구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 같은 법안을 두고 한 정치인은 “야, 기분 좋다”라고 자축했고, 피해자는 “지옥에나 가세요”라고 절규했다. 이제는 실정법이 아니라 천벌에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피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해자만 행복한 나라가 됐다”고 탄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기분이 좋았을까.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빼앗긴 국민이 세상을 향해 외친 ‘마지막 비명’을 다시 생각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어수웅 논설위원 jan1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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