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마크롱 국빈 방문이 남긴 진짜 성과

dalmasian 2026. 4. 11. 23:07

[전문가 칼럼] 2026.04.10.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

지난 4월 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 방한은 단순한 외교 일정을 넘어서는 인상을 남겼다.

정상회담과 국빈 오찬, 경제계 미래 대화, 문화 일정까지 숨 가쁜 일정이 이어졌지만, 많은 이의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행사의 화려함보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바로 그 태도가 이번 방문의 외교적 의미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국가 지도자는 많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리더는 흔치 않다. 이번 방한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그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고 살가운 사람이었다. 딱딱한 권위 대신 편안한 에너지로 상대를 대했고, 짧은 순간에도 상대가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진짜 리더십은 거창한 연설보다 먼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를 처음 가까이서 만났을 때 나의 배지를 보고 “레지옹 도뇌르 수훈하셨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내 휴대폰을 직접 조정해가며 셀카를 찍어주었고 자리를 떠날 때는 “Au revoir, Madame.”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국가 원수의 공식 동선 속에서도 상대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 그 태도는 의전 이상의 인상을 남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바로 그런 장면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이번 방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정치와 경제를 넘어 ‘문화와 사람의 언어’까지 함께 가져왔다는 점이다.

출국 전 그는 한국의 문화예술 인사들과 별도의 만남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싸이, 펠릭스, 전지현, 노상현, 전종서 등 한국을 대표하는 K-스타들의 얼굴들이 함께했고 프랑스어권 문학의 상징적 존재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다니 라페리에르도 동석했다.

이 만남은 단순한 디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가 한국을 더 이상 단순한 ‘중요한 시장’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과 영향력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방문을 계기로 두 나라는 문화와 콘텐츠, 미래 산업 협력의 외연까지 함께 넓혀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과 프랑스는 방산, 에너지, 원전, 반도체, 양자 기술 등 전략 산업 전반에서 협력 강화를 확인했고 무역 확대 의지도 분명히 했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 속에서 에너지 안보와 해상 수송로 안정이라는 공동 과제를 공유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에 신뢰 가능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과정인 이유이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가운데 드물게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진 나라이고 한국은 이 전략의 핵심 국가이다. 이미 두 나라는 민주주의, 개방 경제, 기술 경쟁력, 그리고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올해 두 나라는 수교 140주년을 맞는다.

프랑스 현지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프랑스와 유럽이 제시하는 ‘제3의 길’, 즉 자율적이고 예측 가능한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조명했다.

사실 외교사에서 오래 기억되는 리더들은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았다. 원칙은 지키되 대화의 문을 닫지 않고 국익을 지키되 상대의 체면과 감정까지 읽어내는 리더십이다.

냉전의 긴장 속에서도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드골식 외교가 그러했고, 갈등의 시대에 문화와 가치, 산업과 안보를 함께 엮어 새로운 파트너십의 지평을 넓혀온 프랑스 외교의 전통도 그러했다. 이번 방한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휩쓸리기보다 스스로의 축을 세우고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식으로 관계를 전진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더욱 빛나는 균형 리더십이다.

마크롱은 ‘국가 원수’와 ‘한 사람’이라는 두 얼굴을 함께 갖춘 리더이다. 격식은 지키되 거리감은 줄이고 권위는 유지하되 위압감은 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을 직함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대하는 감각이 있다.

불안한 중동 정세 속에서 이뤄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품격이 외교를 얼마나 멀리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돌아갔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 역시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위에서 움직인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국가는 신뢰를 필요로 하고, 신뢰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한불클럽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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