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2026.04.07.

1990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지방 소도시 곳곳에서는 미분양 주택 문제가 대두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주택 물량이 쌓이는 것을 일시적인 경기 침체의 문제로 인식했다. 일부 소도시에서는 도리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건설업을 부양하기 위해 공급을 추가하는 정책을 펼쳤다. 고령화, 일자리 감소에 따른 인구 유출 등 도시의 구조적 흐름을 외면한 정책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미분양 문제를 넘어 ‘아키야(空家)’라는 대규모 빈집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의 ‘불 꺼진 아파트’가 3만 가구를 넘으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다 짓고도 팔리지 않아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아파트의 열에 아홉은 지방에 있다. 3월 처음으로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12억원을 넘어서며 고공행진하고 있는 서울 부동산 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리 정부도 지방 미분양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방 미분양 사태가 단순히 지역 건설사의 부도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는 금융권까지 연쇄적으로 부실 위험을 높이고 지역 경제 둔화로도 연결된다.
대책은 익숙하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미분양 해소를 위해 썼던 처방전을 다시 꺼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준공 전 아파트를 환매조건부로 사들이고 있다. 미분양 주택 관련 세제 부담도 완화했다. 공공이 민간의 실패를 떠안고, 금융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지난해부터 대책이 가동됐지만 지방의 악성 미분양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신용평가사는 “현 단계에서 마련된 지방 부동산 시장 지원 정책이 지방 주택경기 전반의 침체 국면을 근본적으로 반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한다.
지방 미분양에 대한 정책 지원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현재 미분양의 성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미분양 증가 시기는 전국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주택 수요 자체가 줄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요의 방향성이 완전히 바뀌었다. 일자리와 교육을 따라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방의 실수요는 약해졌고, 투자 수요 역시 수익률이 높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주택 수요의 수도권 쏠림 현상의 강도가 과거보다 훨씬 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현 정책은 당장 미분양 물량을 인위적으로 줄일 수는 있지만, 지방 건설경기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다. 정책이 멈추는 순간 지방 미분양 문제는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부는 지방 미분양 문제에 있어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 등 가용한 지역 활성화 대책을 지체하지 말고 써야 하고, 도시 재생에 초점을 맞춘 지역별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빈집의 도시’라고도 불렸던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도시 재생을 통해 산업과 교육을 통해 청년 인구를 끌어들이며 주택 수요를 되살렸다.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미분양 사태에 빠진 미국은 기관투자자를 통해 시장의 장기적 주택 수요를 만들어냈다.
한 번 구조적 문제를 놓치면, 그 대가는 길고 무겁다. 아직 우리는 지역 불균형 문제에 기반한 지방 미분양 사태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 지방 미분양 사태의 이면에 있는 지역의 쇠퇴와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를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지방의 미분양 문제는 형태만 바꿔 되풀이될 뿐이다.
김유진 기자 bridg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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