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고유가 속 돈풀기, 인플레이션 자극한다

dalmasian 2026. 4. 7. 06:40

[유혜미 칼럼] 2026.04.07.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확장재정 고집땐 물가 상승 더 부추겨
‘수요만 자극’ 보편적 현금지원 대신
에너지 취약층 부담 경감 초점 맞춰야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주식시장은 롤러코스터 장세를 반복하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다. 이런 금융시장의 불안은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이 한국의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신호다. 이렇듯 한국 경제에 짙은 위기감이 감돌자 정부는 발 빠르게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포함한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대응에 기시감이 드는 것은 2020년 전 세계를 위기에 빠뜨린 코로나19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를까.

코로나19 위기는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붕괴된 전례 없는 경제적 충격이었다. 이런 충격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가운데 극심한 경기침체를 유발한다. 당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금리를 전격적으로 낮추고 대규모 재정 지출과 현금 지원을 확대한 것은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에 반해 현재 중동발 유가 급등은 생산 비용 상승과 공급망 차질로 수요보다 공급이 크게 급감하는 성격의 충격이다. 특히 국내에서 사용하는 원유 전량을 수입해 유가 급등의 충격에 전적으로 노출된 한국 경제는 이로 인해 경기가 나빠지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풀면 경기회복에 앞서 물가가 먼저 오른다. 결국 또 다른 인플레이션 위기로 이어진다.

이미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분석한 여러 선행 연구가 이런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시행한 대규모 재정 지원이 당시 2021년 말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약 3%포인트 높인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코로나19 이후 확장적 재정정책이 2022년 하반기 물가상승률을 0.7%포인트 높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연구가 재정지출이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공급 충격이 발생한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규모 현금 지원과 재정지출 확대가 유일한 해결책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유가 급등은 직접적으로 공급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더 크지만 간접적으로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가 급등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특히 유가 상승으로 소득 활동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영세 화물차주, 배달 라이더, 에너지 빈곤층 등 취약 계층은 더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보편적 현금 지원을 처방할 경우 공급 충격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만 자극해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이로 인해 소비는 더욱 위축되고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같이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주변국들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휘발유 보조금 지급 등 에너지 가격 안정화 정책과 저소득층 지원 위주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고 대만 역시 보편적 현금 지원보다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전이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즉 수요를 끌어올리는 대신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욱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통화정책은 긴축 기조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확장재정을 고집한다면 긴축적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정책 간 엇박자로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보편적 현금 지원과 재정 지출 확대 대신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에너지 비용 안정 및 공급망 조기 복원을 위한 방안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고착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 정책 기관 간 소통 창구를 상설화하는 등 정책 공조 의지를 뚜렷이 해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로부터 얻은 값비싼 교훈을 잊고 다시 과거의 잘못된 처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재정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다. ‘어디에 쓰느냐’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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